정약용의 상론

생활/글
생김새가 운명을 결정할까? 다산은 『상론(相論)』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서당에 다니는 사람은 그 상(相)이 아름답고, 시장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상이 검고, 짐승 치는 사람들은 그 상이 헝클어졌고, 골패판이나 투전판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 상이 어르렁거리는 짐승 같은가 하면 또 약삭빠르기도 하다. 
 대개 익히는 것이 오래되면 성품도 날마다 따라서 변하니, 마음속에 간절한 것은 바깥으로 표현되는 법이라, 상은 그래서 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상이 변한 것을 보고는 또한 “상이 이렇기 때문에 그 익히는 것이 저와 같다.”고 말한다. 
아, 이것은 정말 틀린 말이다. 사람은 하는 일에 따라서 그 상이 바뀌게 된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다산은 주로 개인의 소업에 따라 상이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지만, 언어와 음식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언젠가 연변에서 수십 년을 산 한국 출신 여성과 사할린에서 수십 년을 산 한국 출신 여성을 보았는데, 얼굴이 확연히 달랐다. 먹는 것과 언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는 일, 언어, 음식에 따라 생김새 달라져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상, 곧 관상을 보고, 그 관상 때문에 어떤 직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운명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다산은 이 말을 비판한다. 다산이 주장하는 바는 한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운명과 직업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아이를 예로 든다. 눈동자가 반짝반짝 하는 어린아이가 있으면 부모는 가를 칠 만하다고 생각해 책을 사고, 스승을 찾는다. 스승은 아이를 보고 가르칠 만하다면서 붓과 먹 같은 학용품을 더 사주면 열심히 가르친다. 나중에 벼슬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자란 청년을 쓸 만한 사람이라며 임금에게 천거하고, 임금은 그를 발탁해 마침내 그 사람은 재상까지 된다. 
 어떤 아이는 얼굴이 ‘풍만하게’ 생겼다. 부모는 부자가 될 관상이라면서 재산을 물려준다. 어떤 부자는 큰 상인이 될 만한 관상이라면서 자본을 넉넉히 대어 주면서 장사에 힘쓰게 한다. 아이는 과연 장사에 힘써서 거상이 되고, 부자가 된다. 

 어떤 아이는 ‘눈썹이 더부룩하고’ 어떤 아이는 들창코다. 아이의 부모와 스승은 앞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아이를 키운다. 결과는 뻔하다. 아이는 부귀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관상을 보고, 가난하고 천한 상이기에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다산은 이 판단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생김새 따지지 않고 기회를 준다면 운명 달라져 세상에 본디 재능과 덕(德)을 가지고도 운수가 기박하여 그 재능과 덕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개 상을 탓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상을 아예 돌아보지 않고, 그를 사랑하였더라면 그 역시 재상이 되었을 터이다. 

 이해에 밝고 귀천에 잘 살피지만 종신토록 곤궁한 사람이 있으면 상을 탓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상을 아예 돌아보지 않고 그에게 밑천을 대어 주었더라면 그 또한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사람이 사는 곳은 사람의 기질을 바꾸고, 먹여 살리는 방법은 사람의 신체를 바꾼다. 부귀는 사람의 뜻을 음란하게도 만들고, 우환은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도 만든다. 

 아침에 활짝 폈다가 저녁에 시드는 사람도 있고, 어제 초췌했다가 오늘은 살이 찐 사람도 있다. 상이란 것이 어떻게 정해진 것이겠는가? 

 

 그렇다. 사람의 상은 외적 조건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상이 원래부터 정한 운명은 없는 것이다. 

다산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기회를 공정하게 준다면, 누구나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과연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인가. 강남, 특목고, 자사고, 사교육 등의 단어는 이 사회에서 공평한 기회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산의 「상론」은 2세기 전의 말이 아니라, 오늘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날아 2013.08.31 10:48 신고 URL EDIT REPLY
글 잘 보고 갑니다. '오늘을 두고 하는 말인 것 이다'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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