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s
마루 밑 아리에티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2010 / 일본)
출연 시다 미라이,카미키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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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인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았습니다.

몇 명의 위대한 리더는 한 회사나 단체를 대표하기도 하지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가운데 들어가는 거장입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낙점받았던 콘도 요시후미(귀를 기울이며, 마녀배달부 키키) 감독이 갑작스럽게 병사한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 내부에서는 후계자를 찾기 위한 작업이 한창인 것 같습니다.

한사람의 위대한 크리에이터가 설립한 스튜디오는 그 사람의 사후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굳이 기번의 역사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국가와 단체는 흥하는 기간이 있으면 쇠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많은 예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영원할것 같았던 디즈니 왕국이 애니메이션계에서 몰락하고 있지요.
디즈니는 자사가 제작한 2d 애니메이션의 몰락을 막지 못하고 결국 픽사의 임원을 대거 채용하여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또한 대를 잇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지브리에서는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이 메가폰을 잡기도 했습니다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후 핏줄에서 실력 위주로, 그것도 될 수 있으면 뉴페이스로 자신을 찾아갈 후계자를 찾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의도는 마루밑 아리에티의 괜찮은 완성도로 좋은 결과를 맺을 듯 보입니다.

 '마루밑 아리에티'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소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게 보이는곳에서 소인이 살고 있다면 인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거기다 소량이지만 생필품 일부를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물론 함께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소인들보다 더 크고 힘이 있다는 사실, 숫적으로 우세하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마루밑 아리에티의 소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인간들과 공존합니다. 바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의 공존입니다. 생필품 일부를 '빌려' 살아가면서, 인간에게는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어쩌면 착한 인간에게는 자신들을 드러내고 공존의 길을 찾는편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개인에게는 안락함을 가져올지 몰라도, 소인족의 존재가 인간에게 알려지는 것이 소인족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날 가능성이 크지요. 결국 인간들과 서로 거리를 두고 모르는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이런 설정을 보면서 저는 길고양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길고양이는 길거리를 헤매면서 먹을것을 찾습니다. 좋지 못한 생활환경때문에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3년이라고 하지요. 제대로 관리받는 집고양이의 수명은 약 15년입니다. 얼마나 가혹한 환경이기에 길고양이의 수명은 5배나 짧아야 할까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며 길고양이는 인간에게 기대지 않은 채 도시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옆집 아주머니에게 봉변을 당하는 길고양이의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고양이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애묘인들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개탄합니다. 길고양이를 단순한 요물, 도둑고양이로 생각하고 잡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인식에 대해서 슬퍼하지요.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의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더라도 항상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고양이와 인간은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다른 두 종이고, 인간에 비해 항상 척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고양이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간의 물건 (예를들어 가장 많은 문제가 되는 음식 쓰레기) 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수없이 많기 때문에 인식이 나아지더라도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가하는 경우는 항상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 길러지지 않는 고양이가 대낮에 길을 걷는다면, 아주 한적한 동네가 아닌 이상 고양이 한마리당 최소 10명이 넘는 사람에게 노출될것입니다. 만일 10%확률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해도 고양이가 해코지당할 가능성은 아주 높아지겠죠.

 결국, 인간과 고양이는 마루밑 아리에티의 소인과 인간과의 관계처럼,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고양이와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공존 관계는 고양이가 사막에 살던 살쾡이이던 시절부터 그랬듯이, 인간의 애완동물일 때 일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해 질때에 비극은 발생합니다. 고양이는 선천적으로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지요. 좋아하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싶은 마음은, 고양이를 위한 것이라 포장하지만 사실 자기 마음의 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싶은것이지요.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고양이는 점점 인간에게 노출되어도 마음을 놓게됩니다. 이는 그 고양이의 생존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지요. 평생 그 고양이를 돌보고 먹이를 줄 수 없다면 말이죠...

그래서, 저는 길고양이의 TNR에는 찬성하지만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는것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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